나태 지옥 그 언저리에서 느끼는 생각

  • 한 달만에 쓰는 글이네요. 글또가 끝난 후에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쓰는 글입니다.
  • 요즘 나태지옥에 빠졌습니다. 모든걸 끝까지 미루는 습관을 가졌던 지난 날에 대해 반성하고…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다짐을 하고자 글을 썼습니다. (빠바빰빰 빠~밤)

나태 지옥 멈춰!

현재의 제 상태를 한 줄 요약하면 "나태지옥"입니다. 최대한 무언갈 미루고 싶고… 누워있고 싶고…집 청소도 귀찮아 하는… 그런 상태입니다.
회사에서도 집에서도 (= 어디서나라는 뜻 ㅎㅎㅎ) 자기 계발과는 좀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습니다.
그렇다고 번 아웃인가? 라고 생각해보면 그것도 또한 아닙니다. 아주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.

그럼 왜! 나태지옥에 빠졌는가하면 글또 활동이 끝난 것이 가장 큽니다. 글또를 할 당시에는 직장을 다니면서 어떻게든 꾸역꾸역 글을 써가면서 자기계발을 할 수 있었지만,
글또가 끝나고 나니 글을 쓰게 되는 동기가 없어지고 글쓰기 뿐만 아니라 다른 활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.

그러나, 이건 글또 탓이 아닌 온전히 제 탓입니다. 저는 "일 미루기 대마왕"이자 "강제성 없이 못 사는 사람"이기 때문입니다.


일 미루기 대마왕

“일 미루기 대마왕” 성격은 후천적으로 얻었습니다. (흑흑) 제 짧은 역사를 되돌아보면 고등학생 때만 해도 굉장히 규칙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었습니다.
대학 입학이라는 확실한 목표 아래 하루 단위로 공부를 쪼개가며 다이어리에 기록을 했습니다. 그땐 제 스스로 "규칙적이고 정해진 삶"을 좋아한다 느꼈습니다.
다이어리에 계획이 덜 지켜지면 반성하는 글도 작성하기도 하고, 제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.

근데! 대학을 입학하고 나서 완전히 성격이 바뀌었습니다. 확실한 계기는 "우리 말과 글쓰기"라는 수업 때입니다. 이 수업은 1학년 2학기 때 듣는 필수 교양 수업으로,
(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) 기말 고사 대신 소논문을 내는 것이 최종 과제였습니다.
저는 하기 싫은 걸 정~~~말 싫어하는 호불호가 강한 타입인데, 고등학교 때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꾸역꾸역 해왔지만 대학교 때는 그만큼 성적이 중요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나봅니다.
결국 소논문을 미루고 미루다 하루만에 20장을 작성했고, 운좋게도 A라는 좋은 성적을 얻었습니다.

인간은 학습의 동물입니다. 저는 이 경험을 통해 "하루만에 해도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으니, 이건 여러 기간동안 붙잡고 있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인 방법이다!"라고 깨우쳤던 것 같습니다.
제 동기 중 한 명이 유독 과제를 일찍 시작하고 일찍 스트레스를 받는 친구가 있었는데, 그 친구를 장난조로 놀리기도 했습니다. "하루 만에 하면 되지 뭐이리 오래 질질 끌어~"라면서요.
또 유유상종이라고 제 주변엔 유독 "일 미루기 대마왕"이 많았습니다. 근데 다들 또 성적은 예상보다 좋았기에 일을 미뤘을 때의 부작용을 충분하게 경험하지 못했습니다.

대학교, 대학원까지 별 탈 없이 이 습관이 굳어졌고, 직장에 와서도 이 습관이 이어졌습니다.
요즘은 일을 할 때, 마감 기한에 맞춰서 끝내는 습관이 있는데요.
과거에는 "일 미루기"의 유일한 부작용이 마감 기한이 되면 급격히 피로하다는 것이었지만, 지금에는 더 많은 부작용들을 체감하고 있습니다.

  • 첫째, 일의 마감 기한까지 미루다보면 또 다른 일이 들어와서 결국 마감 기한을 못지키게 된다.
  • 둘째, 다른 분들의 걱정을 산다.
  • 셋쨰, 컨디션의 회복이 안 된다.

이렇게 리스트업하니 정말 부작용이 심각하네요…ㅋㅋㅋㅋ 일단 첫번째 부작용은 최근 경험한 일에서 느꼈습니다.
2주 간의 시간이 주어졌던 분석 건이 있었는데 급한 건이 아니니 좀 천천히 데이터를 파악하고 있었습니다. 그리고 도메인이 낯설어서 하기 좀 부담스러운 면도 있었는지 미루고 있었습니다.
근데 일을 미루는 동안 더 우선순위가 높은 다른 분석 건이 오는 바람에 이 분석 건부터 처리해야 했습니다.
결국 원래 하고자 했던 분석 건은 이 주면 충분하겠다 생각했지만 남은 working day는 고작 이틀이었습니다.
이틀 동안 분석을 끝내지 못해서 하루를 연장했으며, 분석 퀄리티도 단순 데이터 조사에서 끝난 것 같아 스스로 많은 후회를 했습니다.
패인은 분석 기간을 짧게 잡은 것도 있었지만 제가 일을 미뤘던 것이 큽니다.

둘째, 다른 분들의 걱정을 삽니다. 제 주변 동료는 저와 달리 계획적이고 일을 미리미리 잘 처리하시는 "일잘러"십니다. 그러다 보니 그분께서 제가 일을 기한까지 못 끝낼까봐, 혹은 예정된 일을 까먹을까봐 걱정이 되셨나봅니다.
제게 한 사흘 전이면 노티를 줍니다. 저는 다행히(?) 일을 까먹은 적은 없지만, 충분히 더 바쁘다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할 말이 없죠.
이런 오해를 받는 것도 제가 일을 미루는 데에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, 악습관을 꼭 고쳐야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.

마지막으로 컨디션과 관련한 내용입니다. 일을 미루다 보면 마감 기한 때 매우 큰 에너지를 써야 합니다. 야근은 물론이지요…하하…
그러면 그 다음 날, 그 다음 다음 날,… 주말까지 피로가 누적되어서 금요일이 되면 반 좀비 상태가 되더군요.
주말에 그럼 푹 쉬냐? 그런 것도 아니죠. (어림도 없지!)

대화의 희열3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오은영 박사님께서 일을 미루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의 심리를 설명한 적이 있었습니다. (링크)
일을 미루는 사람은 일반적으로는 게을러 보이지만 완전 반대일 가능성이 크다 하셨습니다. 게으른 게 아니라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큰 사람이고, "제대로 못해서 적당히 해서 창피해질 바에는 차라리 안하는게 낫겠다"라는 생각을 가지기 때문에 일을 미룬다 하셨습니다. 그리고, 일을 끝까지 미루고, 데드 라인 때 "이거 지금 안하면 죽음이다"라는 긴장감으로 일을 수행하는 심리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. 그리고 오히려 이랬을 때 실제 수행도와 완성도는 높을 가능성이 많다라고 하셨는데요.

저도 말씀 하나하나에 큰 공감을 했습니다.
저도 일을 수행할 때, 빠르게 훑어보지 못하고 한땀 한땀 보고서를 작성해야 일의 진도가 나가는 스타일입니다. 그래서 데드라인까지 이런 일을 반복하여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입니다.
그리고 "일 각 잡기"도 오래 합니다. 이 일은 뭐지? 어떻게 해야하지?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? 이런 고민들을 많이 하다보니 다른 분들에 비해서 일이 느린 편입니다.
더 중요한건 마감 기한이 다가오면 흔히 말하는 "똥줄"이 제대로 타면서, 극강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나름대로 일을 잘 마무리하고 있는 상태입니다.

오은영 박사님께서 제안하신 방안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.

  • 첫째, 데드라인을 '삶의 선’으로 바꿔라.
  • 둘째, 완벽에 대한 기준을 완화해라.

사실 위 조언을 받아들여 단기간에 습관을 바꾸기란 어렵지만, 그래도 이 성격은 못 바꾸는 거라 못 박는 것보단 바꾸고자 하는게 더 좋은 자세라 생각이 듭니다.


강제성 없이 못 사는 사람

강제성, 그것이 주는 압박감에 잘 순응하는 편이다 보니 항상 강제성에 의존하여 무언가를 해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.
글또도 대표적인 예시입니다. 글또에서 하는 규칙 그대로 2주마다 글을 쓰고 그보다 많게도, 적게도 하지 않았습니다.

그 것뿐이냐, 저는 남자친구와 연간 계획을 2년째 세우고 있는데 하나씩 달성하면 10만 원 상당의 선물을 주는 내기를 하고 있습니다.
그 효과는 갱장합니다. 그렇게 게으른 사람이 아직까지도 "일주일에 운동 3번"을 지키고 있는걸요!

근데 문제는 이제 그 강제성이 없으면 무언가를 자발적으로 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.
마치 제 인생의 default가 "하기 싫어!"이고 억지로 어떤 제도에 의해 수동적으로 하게 되는 느낌이었습니다.

어느 날 “일주일에 운동 세 번” 약속도 마찬가지로 네 번을 하지도, 두 번을 하지도 않고 딱 세 번만 하고 있었는데,
운동 기록들을 보면서 반성한 적이 있었습니다. 세 번이라면 월, 수, 금 혹은 화, 목, 토 이렇게 띄엄띄엄하면 좋으련만,
몇 주 째 제 운동 기록은 **“월, 토, 일”**이었습니다. 이 말인 즉슨, 월요일에 파이팅 넘치게 운동을 하고 "아 하기 싫어 하기 싫어!!"하며
주말까지 미루다가 토요일, 일요일을 몰아서 하게 되는 양상인 것이죠…

그래서 이 루틴을 깨고자 일부러 저번 주에는 3일 연속으로 운동을 나가보았습니다.
그랬더니 인생에서 느낄 수 있는 뿌듯함 Top 10에 들 정도로 아주 큰 뿌듯함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!
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니, 너무나도 뿌듯하고 제 스스로 루틴을 깼다는 점에서 제 머리 속에서 아주 후하게 점수를 주더군요.

일상 속에서 얻는 깨달음이 참 별 거 아닌데도 제가 성장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좋았습니다.


이제 또 성장할 때

이 우연한 날을 계기로, 저는 루틴을 깨는 작업들을 계속 도전해보고자 합니다.

한창 취준생일 때는 "내가 누구일까"에 대해서 고민하는 시기가 많았다면, 요즘은 "내가 누구이니까 이건 못해"로 생각하면서 제 스스로 한심하다 느낄 때가 있습니다.
어느 정도 제 성격을 알게 되니 그 성격대로 행동한다고 할까요?

난 원래 일을 잘 마루고, 나중에 집중력이 좋아지는 타입이다. 혹은 강제성이 있어야만 일을 한다.라고 제 존재를 한정시키고 나니 더 이상 개선의 여지가 없었습니다.
나이가 들어가면 이런게 더 심해질 것 같아서, 저를 정의하는 것을 멈추려고 합니다.

유일하게 정의하고 싶은 저는 **“꾸준히 성장하고 싶은 사람, 머물러 있지 않는 사람”**이 되고 싶습니다.
작년 2월 25일에 글또에서 처음 활동하면서 아래와 같은 문구를 남긴 적이 있는데요.

저는 위베어베어스를 좋아하는데 이 그림이 제 삶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. 위로 올라갈수록 버전이 업그레이드된다고 가정했을 때, 지금의 저는 판다그리즐리 (갈색곰) 사이인 ver 2.1.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. 각 곰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.

  • 아이스 베어 (흰 곰) (ver 1): 통계학이 좋아 통계학과를, 코딩이 좋아 데이터 분석 분야를 택했던 제 대학 시절입니다. 이것 저것 경험해보고 머신러닝에 대해 많이 공부했다 생각했지만 취업 준비 중 데이터 분석 면접에서 아무것도 적용하지 못했던 절 보며 충격을 먹습니다…!
  • 판다 (ver 2): 앞에서 설명해 드린 대학원 시절이 팬더에 가깝습니다. 이번엔 데이터 분석 면접도 무사통과해서 자신감이 넘친 모습입니다. 그러나 결국 또 취업의 고비를 넘지 못합니다.
  • 방황도, 걱정도 많은 지금 글또라는 좋은 모임을 만나 그리즐리 (ver 3)로 진화! 하는 그날을 기원해봅니다.

이번의 깨달음을 통해 그리즐리 (ver3)로 진화했다 마무리하고 싶습니다.
소소하지만, 나태해지지 않도록.